2025. 5. 9. 14:00ㆍ교육인사이트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책문(策問)은 단순한 암기시험이 아니었습니다. 국가 현안을 분석하고 근거를 제시한 뒤 해결책을 논증하는 시험이었습니다. 책문과 대책의 의미부터 오늘날 대입 논술·글쓰기 교육과의 공통점까지 교육적 관점에서 살펴봅니다.
조선시대에도 오늘날의 논술시험과 비슷한 평가가 있었을까요?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책문(策問)입니다.
책문은 단순히 역사나 유교 경전을 얼마나 많이 외웠는지를 확인하는 시험이 아니었습니다.
정치·경제·국방·사회 문제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제시하고, 응시자가 그 문제의 원인을 분석한 뒤 자신의 해결책을 논리적으로 제안하도록 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과거시험에서 고시관이 당면 문제를 제시하는 것을 책문 또는 책제, 이에 대한 응시자의 답변을 **대책(對策)**이라고 설명합니다.
교육의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시험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문제해결력
비판적 사고력
근거를 활용하는 능력
논리적인 글쓰기
를 수백 년 전 관리 선발시험에서도 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최근 대학입시에서도 다시 논술과 글쓰기 역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의 책문과 오늘날의 대입 논술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를까요?
1. 책문(策問)이란 무엇인가?
책문은 쉽게 표현하면
“나라에 이런 문제가 있는데 당신이라면 어떻게 해결하겠는가?”
라고 묻는 시험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책문을 정치에 관한 문제 등을 제시하고 응시자에게 의견을 묻는 시험으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대책(對策)이라고 했습니다. 즉 책문의 기본 구조는 매우 단순합니다.
문제를 제시한다.
↓
응시자가 문제를 분석한다.
↓
역사와 경전 등을 근거로 제시한다.
↓
해결방안을 제안한다.
↓
그 방안이 왜 타당한지 설득한다.
이 구조는 의외로 오늘날의 정책보고서나 논술 답안 구조와 상당히 비슷합니다.

2. 책문은 단순한 '글짓기 시험'이 아니었습니다
책문에 대해 가장 오해하기 쉬운 부분입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을 뽑는 시험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핵심은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능력만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현실적인 대책을 제시하는 능력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국방 문제가 제시됐다면 단순히,
“나라를 튼튼하게 해야 한다.”
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왜 국방력이 약해졌는지 분석하고,
과거에는 비슷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으며,
현재 상황에서는 어떤 정책이 가능하고,
그 정책을 시행했을 때 어떤 효과와 문제가 예상되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교육학적으로 표현하면 책문에는 최소 다섯 가지 사고과정이 필요합니다.
독해
↓
문제 정의
↓
원인 분석
↓
근거 선택
↓
해결방안 제안
따라서 책문은 지식의 양뿐 아니라 지식을 현실문제에 적용하는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기존에 알려진 '책문은 복시에서 봤다'는 설명은 조금 더 정확하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책문을 소개하는 글 가운데
- 초시 → 복시 → 전시
구조를 설명하면서 책문을 단순히 복시의 시험과목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과거제는 시기와 시험 종류에 따라 운영방식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우리역사넷은 조선 문과 시험에서 강경 등의 초장, 표문 등의 중장에 이어 종장에서 책문을 시험하는 구조가 정비됐다고 설명합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회시에서 책문으로 시험하도록 한 사례가 확인되며, 전시의 제술 과목으로 책문이 활용된 사례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책문을
“복시에서만 치른 시험”
이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조선 문과의 중요한 제술·종장 과목이었으며 회시와 전시 등에서도 활용된 정책형 논술시험”
이라고 이해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4. 전시(殿試)도 단순한 '면접'과는 다릅니다
전시를
“임금 앞에서 보는 최종 면접”
이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현대인이 이해하기에는 편하지만 정확하게는 면접시험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전시는 이미 일정 단계의 시험을 통과한 문과 응시자를 대상으로 임금 앞에서 치르는 최종 시험이었고, 여기에서도 제술 문제가 출제됐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임금이 직접 문과 중시의 책문 문제를 내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따라서 현대의 면접보다는
"왕이 주관하는 최종 논술·제술 시험"
에 가깝다고 이해하면 좋습니다.
5. 책문의 주제는 얼마나 현실적이었을까?
책문의 흥미로운 특징은 당시 사회가 실제로 고민하던 문제가 시험에 등장했다는 점입니다.
- 국방
- 외교
- 재정
- 인재 등용
- 민생
- 법제
- 교육
- 농업
- 재난
등 국가 운영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가 출제됐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역시 책문을 정치상의 문제를 제시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작성하도록 하는 시험으로 설명합니다.
즉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경전을 외우는 것만으로 부족했습니다.
당시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이해해야 했습니다.
오늘날 표현으로 바꾸면 시사 문제를 읽고 자신의 정책적 판단을 글로 표현하는 시험과 비슷합니다.
6. 책문과 현대 대입 인문논술은 무엇이 비슷할까?
- 시대와 평가 방식은 전혀 다르지만 사고의 구조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 책문에서는 현실 문제를 이해해야 했습니다.
- 현대 논술에서는 제시문과 자료의 핵심 내용을 이해해야 합니다.
- 책문에서는 역사와 경전을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펼쳤습니다.
- 현대 논술에서는 주어진 제시문과 자료를 근거로 논지를 구성합니다.
- 책문에서는 현실적인 해결책을 요구했습니다.
- 현대 인문논술에서는 논제가 요구하는 판단이나 비교·분석을 논리적으로 제시해야 합니다.

7. 하지만 책문과 현대 논술은 분명히 다릅니다
두 시험이 완전히 동일하다고 보는 것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책문은 기본적으로 관료 후보에게 국가정책과 정치 문제에 대한 판단을 요구했던 시험입니다.
반면 현대 대학 논술은 대학에서 공부하는 데 필요한
- 독해력
- 분석력
- 자료해석
- 논리적 추론
- 글쓰기
등의 학업역량을 평가하는 성격이 강합니다.
또한 현대 논술은 대학마다 문제유형과 평가기준이 다릅니다.
따라서 책문은 현대 대입 논술의 직접적인 전신이라고 보기보다는 한국 교육사에서 볼 수 있는 고전적인 정책형·논증형 글쓰기 평가의 사례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8. AI 시대에 책문이 다시 흥미로운 이유
생성형 AI는 글을 매우 빠르게 작성합니다.
보고서도 만들고,
요약도 하고,
논리적인 문장도 만들어줍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글쓰기 능력은 중요하지 않을까요?
오히려 저는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AI가 문장을 만드는 능력이 좋아질수록 인간에게 더 중요해지는 능력은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
무엇이 문제인지 정의할 수 있는가
어떤 근거가 타당한가
여러 대안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자신의 판단을 설명할 수 있는가
입니다.
흥미롭게도 이것은 책문이 평가하려 했던 능력과 상당히 비슷합니다.
책문에서 중요한 것은 문장을 길게 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문제를 이해하고, 근거를 찾아, 자신의 해결책을 설득하는 것
이었습니다.
9. 그래서 앞으로의 글쓰기 교육도 달라져야 합니다
아이에게
“일기 많이 써라.”
“책을 많이 읽어라.”
“논술을 많이 써라.”
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글쓰기 전에 먼저 생각하는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의 사회 문제를 제시하고 다음 질문을 해보세요.
무엇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니?
왜 그런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하니?
반대 입장에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네 주장에 사용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해결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그 해결책의 부작용은 없을까?
이 질문에 답한 다음 글을 쓰게 하면 글의 구조가 훨씬 명확해집니다.
좋은 글쓰기는 문장에서 출발하기보다 좋은 사고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10. 책문식 글쓰기, 가정에서도 해볼 수 있습니다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라면 다음 방식으로 연습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제를
“학생들의 생성형 AI 사용을 학교에서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까?”
라고 정합니다.
그리고 다음 순서로 생각하게 합니다.
STEP 1. 문제 정의
AI 사용에서 실제 문제가 무엇인지 정합니다.
STEP 2. 찬반 근거 찾기
허용해야 하는 이유와 제한해야 하는 이유를 각각 찾아봅니다.
STEP 3. 자신의 기준 정하기
무조건 허용 또는 금지가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허용하고 어떤 경우에는 제한할지를 판단합니다.
STEP 4. 대안 제안하기
학교가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규칙을 만들어봅니다.
STEP 5. 글로 표현하기
마지막에 자신의 판단과 근거를 글로 정리합니다.
이 방식은 단순한 글쓰기 연습을 넘어 비판적 사고와 문제해결 능력을 함께 키울 수 있습니다.
11. 최근 대학입시에서 논술을 다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
2027학년도 수시에서도 논술전형은 상당수 대학에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대입정보포털 '어디가'에도 2027학년도 논술위주전형을 별도로 설명하는 자료가 제공되고 있고, 2027 수시 논술 관련 정보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고 있습니다.
논술전형이 전체 대학입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일부 주요 대학과 인기 모집단위에서는 지원자가 매우 많이 몰립니다.
따라서 학생에게 논술전형이 적합하다면 단순히
“글을 잘 쓰니까 논술을 해보자.”
가 아니라
제시문 독해력 + 논제 분석력 + 근거 구성 + 논증 + 시간관리
를 함께 평가해야 합니다.
이 내용은 다음 글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 2027 대입 논술전형, 글쓰기 잘하면 유리할까?|교육 전문가가 알려주는 논술 준비법
자주 묻는 질문 FAQ
Q. 조선시대 책문은 무엇인가요?
과거시험에서 정치와 국가 운영 등 당면 문제를 제시하고 응시자가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논리적으로 작성하도록 한 시험 문제를 말합니다. 질문을 책문, 그에 대한 답안을 대책이라고 했습니다.
Q. 책문은 복시에서만 출제됐나요?
그렇게 단순하게 보기는 어렵습니다. 문과의 종장 제술 과목으로 활용됐으며 회시나 전시 등에서 책문이 출제된 사례도 역사자료에서 확인됩니다.
Q. 책문과 현대 논술은 같은 시험인가요?
아닙니다. 목적과 형식은 다릅니다. 다만 문제를 이해하고 근거를 활용해 자신의 판단을 논증한다는 사고 구조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Q. 책문을 현대 글쓰기 교육에 활용할 수 있을까요?
가능합니다. 사회 문제를 제시하고 문제 정의 → 원인 분석 → 근거 → 대안 → 반론 검토 순으로 글을 쓰게 하면 논증적 사고 훈련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Q. AI 시대에도 글쓰기가 중요한가요?
AI가 문장을 대신 만들어줄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문제를 정의하고 근거를 판단하며 자신의 결론을 설명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마무리|책문이 평가했던 것은 결국 '생각하는 힘'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책문은 단순한 암기시험도, 화려한 문장을 만드는 글짓기 시험도 아니었습니다.
국가가 당면한 문제를 이해하고,
원인을 분석하고,
근거를 제시하고,
현실적인 대안을 만든 뒤,
그 대안이 왜 필요한지를 설득해야 했습니다.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런 사고과정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AI가 지식과 문장을 쉽게 제공하는 시대가 되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판단하고, 근거를 선택하고,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능력
은 더욱 중요한 교육의 목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책문은 단순한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한 과목이 아니라 오늘날의 논술과 사고력 교육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흥미로운 교육사적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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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및 참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책」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책문」
우리역사넷 과거제·문과 시험 관련 자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조선시대 과거시험 자료
최종 업데이트: 2026년 8월
'교육인사이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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